필자는 도시의 탈을 쓴 시골에 산다. 간신히 한 곳 있는 영화관에서 새로 나온 영화를 챙겨보고, 학생들의 문제집 판매량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은 서점에서 한달에 한번 바뀌는 베스트셀러 책장을 들여다보며, 사용하는 노트북의 수리라도 받으려면 옆 도시까지 움직여야 하는. 그런 겨우겨우 도시라고 불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북적거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대도시를 동경한다. 높게 뻗은 건물들과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대중교통, 어디로 눈을 돌려도 밝게 빛나는 환한 조명은 지금도 내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든다. 좋아하면 닮는다더니, 웃기게도 필자는 아무 급할 일 없는 이 작은 도시에서 언제부턴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리의 풍경을 눈에 담지 않았고, 움직이는 도중에도 자주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렸다. 항상 끼는 이어폰에서는 싫어도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EDM이 흘러나왔다.

느리게 가는 도시의 빨리 사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도 닥달하는 사람이 없는데, 스스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어딘가 불안했다. 내가 가치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이런 상태를 별로 문제삼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들어서 ‘왜?’ 라는 질문이 자꾸 들었다.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대답 대신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남들은 ‘타임 푸어’니 뭐니 하면서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데, 나는 누구보다 시간이 풍족한데도 자꾸 스스로 족쇄를 채우려 하는 상황이 너무 아이러니했다. 더 이상 고민할 건 없었다.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갔다. 항상 듣던 Dance Mix 대신 Chill Mix를 틀었다. 메시지가 온 스마트폰을 알고도 가만히 냅뒀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깜빡거려도 마음을 졸이지 않았다.

나는 느리게 가는 도시의 느리게 사는 사람이다.